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하늘은 더없이 높아만 가는 계절. 뜨거웠던 여름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기 시작하는 시점을 우리 조상들은 24 절기 중 하나인 '백로(白露)'라 불렀습니다.
단순히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것을 넘어, 자연의 순리에 따라 몸을 보하고, 다가올 풍요로운 수확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시기였습니다.
오늘은 백로에 먹는 음식과 그 속에 담긴 의미, 그리고 아름다운 전통문화에 대해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조상들의 지혜를 따라 제철 음식을 맛보며 건강한 가을을 맞이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하얀 이슬' 백로(白露)란 어떤 절기일까요?
백로(白露)는 24절기 중 15번째 절기로, 양력으로는 보통 9월 7일 또는 8일 무렵에 해당합니다. '백로'라는 이름은 한자 뜻 그대로 '흰 이슬(White Dew)'을 의미합니다.
여름의 더위가 물러가고 밤 기온이 크게 내려가면서, 대기 중의 수증기가 풀잎이나 물체 표면에 하얀 이슬로 맺히기 시작하는 데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즉,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자연의 신호인 셈입니다.
가을의 시작 무렵의 자연 변화
- 큰 일교차: 낮에는 아직 햇살이 따갑지만, 아침저녁으로는 기온이 뚝 떨어져 쌀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교차가 매우 커지는 시기입니다.
- 높고 맑은 하늘: 습도가 낮아지고 공기가 맑아져, 전형적인 가을의 높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 농작물의 결실: 벼가 여물기 시작하고, 각종 과일과 곡식이 익어가는 등 본격적인 수확의 계절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이처럼 여름내 지쳤던 자연 만물이 결실을 맺기 시작하는 풍요로운 계절, 가을의 문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자연의 변화에 맞춰 몸을 보하고, 다가올 추석과 수확기를 준비하며 지혜롭게 절기를 보냈습니다.
(2025년 6월 28일 현재 정보 기준입니다.)
백로에 먹는 음식, 제철 보양식으로 가을을 맞이하다
가을의 시작에 먹는 음식에는 특별히 정해진 '하나'의 음식보다는, 이 시기에 가장 영양이 풍부하고 맛이 좋은 '제철 보양식'을 즐기는 전통문화가 있습니다. 여름내 더위에 지친 기력을 보충하고, 큰 일교차에 대비해 면역력을 키우기 위함이었습니다.
1. 탐스러운 가을의 전령사, '포도'와 '배'
가을의 시작 무렵은 포도와 배가 가장 맛있는 시기입니다.
- 포도: "백로에 포도를 먹으면 겨울까지 병치레를 안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포도는 영양가가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포도에 풍부한 비타민과 유기산은 피로 해소에 도움을 주며, 항산화 성분인 레스베라트롤과 안토시아닌은 노화 방지와 건강 증진에 좋습니다.
- 배: 배는 기관지 건강에 좋은 대표적인 과일입니다. 루테올린 성분이 풍부하여 기침, 가래, 기관지염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건조하고 일교차가 큰 가을철, 호흡기 건강을 지키기에 안성맞춤인 제철 과일입니다.
2. 땅의 기운을 품은 '버섯'과 '고구마'
- 버섯 (특히 송이버섯): 가을의 시작부터는 자연산 버섯이 나기 시작하며, 그중에서도 '버섯의 으뜸'이라 불리는 송이버섯은 이 시기에 맛과 향이 절정에 이릅니다. 송이버섯은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혈액순환을 도우며, 뛰어난 항암 효과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귀한 보양식으로 대접받았습니다.
- 고구마: 가을의 대표적인 구황작물인 고구마 수확도 가을의 시작 무렵부터 시작됩니다. 고구마는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장 건강에 좋고,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C가 풍부하여 면역력 강화와 피부 미용에 도움을 줍니다.
3. "가을 전어는..." 놓칠 수 없는 가을의 맛! '전어'와 '대하'
- 전어: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가을 전어는 고소한 맛이 일품입니다. 가을의 시작을 전후하여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지방 함량이 가장 높아져 최고의 맛을 자랑합니다.
- 대하: 가을은 대하(왕새우)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9월부터 11월까지 잡히는 자연산 대하는 쫄깃한 식감과 달큼한 맛이 특징이며, 키토산과 타우린이 풍부하여 피로 해소와 건강 증진에 좋습니다.
4. 선조들의 지혜, 백로에 즐기던 보양식 '닭요리'
닭을 잡아 요리해 먹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닭고기는 대표적인 고단백 저지방 식품으로, 여름내 허해진 기력을 보충하고 다가올 추운 계절을 대비하는 훌륭한 보양식이었습니다. 맑은 국물의 백숙이나, 각종 채소를 넣고 푹 쪄낸 닭찜 등으로 즐겼습니다.
백로 무렵 즐기던 우리 조상들의 풍속과 놀이 (전통문화)
기을의 시작에 먹는 음식 외에도, 이 시기에는 조상들의 지혜와 공동체 의식이 엿보이는 다양한 전통문화와 풍습이 있었습니다.
벌초(伐草)와 성묘(省墓)
가을의 시작 무렵 가장 중요한 전통문화는 바로 추석을 앞두고 조상의 묘를 찾아 풀을 베고 깨끗하게 정비하는 '벌초'와 '성묘'입니다. 여름내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베어내고 조상의 묘를 단정히 하는 것은 후손으로서의 당연한 도리이자, 우리 민족의 중요한 효(孝) 문화입니다.
농사 관련 풍습 및 속담
가을의 시작은 농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벼 이삭이 패고, 밭작물이 여물어가는 때라 날씨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습니다.
- "백로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 가을의 시작 무렵에 비가 오면 벼가 튼실하게 잘 여물어 풍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 "백로 전후로 밤과 낮의 기온 차가 크면 곡식이 잘 익는다": 큰 일교차가 곡식의 당도를 높여준다는 조상들의 경험에서 나온 지혜입니다.
건강 관리
큰 일교차로 인해 감기 등 호흡기 질환에 걸리기 쉬운 시기이므로, 옷차림에 신경 쓰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건강을 챙겼습니다. 특히 배나 도라지, 생강 등을 달여 마시며 목을 보호했습니다.
가을맞이 대청소
여름 동안 사용했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가을과 겨울에 사용할 옷가지나 침구를 꺼내 햇볕에 말리는 등 집안을 정비하며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https://youtu.be/UQWt1 crELjg? si=Tttl-emYxnLU7 VCI
백로에 먹는 음식과 전통문화 관련 자주 묻는 질문 (FAQ)
Q1: 백로에 꼭 먹어야만 하는 특별한 음식이 정해져 있나요?
A1: 설날의 떡국이나 추석의 송편처럼, 가을의 시작에 반드시 먹어야 하는 '단 하나의' 특정 음식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먹는 음식의 핵심은 '그 시기에 가장 맛 좋고 영양이 풍부한 제철 음식을 즐기며 건강을 챙긴다'는 데 있습니다. 포도, 배, 버섯, 전어 등 이 시기에 자연이 내어주는 최고의 선물을 맛보는 것이 바로 가을의 시작 전통 음식 문화입니다.
Q2: '백로'라는 새와 절기 '백로'는 무슨 관계가 있나요?
A2: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발음이 같아 혼동할 수 있지만, 새 백로(白鷺)는 '흰 해오라기'를 의미하는 반면, 절기 백로(白露)는 '흰 이슬'을 의미합니다. 순우리말로는 '흰이슬'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Q3: 24 절기는 음력인가요, 양력인가요?
A3: 많은 분들이 24 절기를 음력으로 오해하시지만, 24 절기는 태양의 움직임(황도)을 기준으로 나눈 것으로, 양력과 거의 일치합니다. 그래서 가을의 시작은 매년 9월 7~8일경으로 날짜가 거의 고정되어 있습니다. 농경 사회에서 계절의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달의 움직임보다는 태양의 움직임에 기반한 절기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Q4: 요즘도 백로 풍습을 지키는 곳이 있나요?
A4: 과거처럼 절기마다 특별한 행사를 치르는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 정신과 문화는 여전히 우리 생활 속에 남아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와 성묘를 가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연례행사입니다. 또한, 가을이 되면 포도나 배, 전어, 대하 등 제철 음식을 찾아 먹는 것 역시 조상들의 지혜로운 음식 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백로, 하얀 이슬이 내리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아름다운 절기입니다. 오늘 저녁, 가족들과 함께 제철 과일이나 고소한 전어구이를 맛보며, 자연의 순리에 따라 건강과 풍요를 기원했던 조상들의 지혜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 글이 여러분의 가을을 더욱 풍성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